10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 했던가요.
비 오고 난 뒤 벚꽃은 활짝 만개하고
당신의 중간고사는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중간고사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8일...
물론 2주 전부터 계획적으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이때쯤 되면 긴장이 세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당신은 열심히 펜대를 굴려가며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마저 쪼개어 가며 문제를 풉니다.
그리고 당신의 옆자리, 류아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퍼질러 자기 바쁘군요.
류아현:(쿠울...)
권진하:'천재는 속 편해서 좋겠네...'
류아현:(쿨쿨...)
권진하:'...신경쓰지 말자.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았어. 집중하자, 집중!' (다시 고개를 들어 칠판을 바라본다)
당신이 그렇게 집중하려 칠판을 바라보면
사회 선생님이 화면에 경제 용어를 설명하며
그래프를 띄워둡니다.
류아현이 똑똑하다는 사실이
이미 선생님들 사이에서 제법 퍼졌는지
이제는 그 어떤 선생님도 류아현을 깨우라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저만한 상팔자가 없습니다.
류아현:(눈을 고르게 감고 새근새근 잔다)
권진하:'잠이 오냐? 어? 선생님 말씀이 아주 자장가지?'
... '자세히 보니까 되게 천사처럼 자네...'
...! (세차게 도리질치며) '아니, 집중해야 할 때에 무슨 잡생각을 하는 거야? 정신 차려!'
류아현 때문에 요즘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비 오는 날 예기치 못하게 함께 자고
버스에서 사고로 뽀뽀도 하고
잠들기 전에 볼 뽀뽀도 하고...
류아현이 당신의 속옷을 빨아서 갖다준 일을 생각하자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고작 이런 일에 신경을 쓸
시점이 아닌데도 말이죠.
그렇게 수업에 얼마나 열중하고 있었을까요,
류아현이 별안간 살짝 떨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곤
멍한 눈을 깜빡이며 칠판과 당신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이 녀석이 웬일이지? 싶던 찰나
류아현이 메모지에 펜으로 무언가를 쓰더니
당신 쪽으로 메모지를 내밉니다.
"점심 시간에 벚꽃 보러가자"
...이게 무슨 전개야?
아무래도 이상한 꿈이라도 꿨나 봅니다.
아니면 뭘 잘못 먹었거나.
권진하:...???
(칠판을 한 번 슥 - 보고는 무슨 나쁜 짓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빠르고 간결하게 답을 적어서 네게 보낸다) "갑자기?"
류아현:(끄덕)
권진하:'얘는 늘 예측 불가의 행동을 한단 말이지...'
'점심 먹고 남는 시간에 바로 공부하려 했는데. 소화 겸 산책의 일환으로 잠깐 구경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 칠판을 보며 한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류아현:(네가 보내는 손짓을 읽고는 작게 피식 웃으며 다시 책상에 엎어진다(?))
권진하:'또 자는 거냐고...' (황당;;;)
류아현:(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잠든다)
권진하:(아현에게 더 신경 쓸 여유도 없고, 깨워봤자 의미없는 짓임을 진작 받아들이고 수업에 집중한다)
수업 시간은 그렇게 이상한 아현의 돌발 행동을 품고
술술 지나갑니다.
점심 시간 종이 울리자
4교시 수업을 진행하던 수학 선생님은
고요하게 퍼질러자는 류아현을 보고
한숨을 푹 쉬다가 교실을 나가고
당신의 원래 점심식사 메이트던 친구들이
슬쩍 다시 다가와 당신에게
언제까지 류아현과 점심을 먹는 것이냐며
가볍게 말을 흘리고 지나가네요.
...그러게. 언제까지 같이 먹지.
너무 익숙해져서 한동안 자각도 못했습니다.
일단은 뭐... 밥 먹기 전까지 공부나 더 할까요.
사각사각 샤프를 들고 수학 문제를 풀다가
시계를 보면, 점심 시간이 20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슬슬 류아현을 깨우고 점심을 먹는 편이 좋겠네요.
권진하:(아현을 흔들흔들 깨우며) 야, 류아현.
이제 일어나.
벌써 점심시간 한참 지났다고.
류아현:(쿨쿨 자고 있다가, 이제는 익숙하게 어깨를 흔드는 손짓에 꼬물거리며 일어난다) ...흐으... 잘 잤다. 벌써?
권진하:"벌써"는 무슨. 너 엄청 오래 잤거든?
안 깨우면 학교 끝날 때까지 자게 생겼어;;;
류아현:항상 학교 끝날 때까지 자잖아, 난. (손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는 네 어깨에 툭 고개를 기대고 올려다본다) 이젠 좀 익숙해져.
권진하:(작게 어깨를 움찔거리고는) ... 이미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어.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안 깨우잖아.
류아현:정말 좋은 발전이야.
(?)
권진하:어휴...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얼른 점심 먹으러 가자.
류아현:서둘러야 할 정도야?
권진하:점심 먹고 꽃 보고 남은 시간에 공부해야지.
시험 기간이잖아.
류아현:흠... 그건 맞지.
맞다, 진하. 나 부탁할 거 있어.
권진하:?
뭔데?
류아현:한국사 노트 필기 빌려줄 수 있어? 하루면 되는데.
권진하:와... 아현이 너...
드디어 공부란 걸 하기로 결심한 거야?
류아현:잘 모르니까 한번 읽어나 보게. 교과서는 장황해서 다 읽기 귀찮고.
...넌 나라고 인생 태평하게 사는 줄 아냐.
권진하:한량이라고는 생각 안 하지만
(으쓱) 네가 나랑 있을 때는 체육 시간 외에 죄다 자는 모습밖에 못 봤으니까.
류아현:그럼 1 + 1 설명하는 걸 다 듣고 있어? 너도 참.
권진하:한국사는 모르는 게 맞잖아.
류아현:그래서 빌려달라고 하는 거잖아.
권진하:흠- 내 노트 필기는 꽤 귀한데.
류아현:? 그럼 어떻게 해야 빌려주는데?
권진하:나한테 뭘 해줄 수 있어?
류아현:흠...
수학 정답지 노릇?
권진하:음~ 그럼 이렇게 하자.
(책상 밑에서 한국사 필기 노트를 꺼내 보이며) 주말에 나랑 같이 공부하는 거 어때?
너는 나한테 수학을 알려주면 돼.
... 필기 노트 다 봤다고 자는 거 금지야.
류아현:...
너 수학 가르쳐줄 때만 있으면 안 되는 거야?
너 혼자 공부하는 동안 난 뭐해?
권진하:책이라도 읽고 있든가.
하여튼 자는 건 안 돼.
류아현:뭐, 그렇다면야. (사이언스지나 읽어야겠다)
권진하:약속한 거다?
그럼 누구 집에서 공부할래?
류아현:응.
우리 집에서 하자. (잡지 양이 좀 많음)
너 주말에 부모님 오신다며. 어수선할 거 아냐.
권진하:그건 그렇지.
좋아.
류아현:그래. (금요일에 식재료 사야지)
이제 점심 먹자.
권진하:(책과 노트를 덮으며) 그래.
당신은 류아현과 함께 서둘러 점심을 먹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문 채
운동장의 외곽을 가볍게 돕니다.
날씨가 제법 더워져서인지 이미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문 학생들이 벚꽃 나무 아래서 조잘거리고 산책을 하고 있네요.
4월의 절정을 맞고 있는 꽃잎들이 가벼운 봄바람에 스쳐
눈송이처럼 흩날리며 교복 어깨위로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류아현:(가볍게 아이스크림을 할짝이며) 한국은 벚나무가 꽤 많더라. 독일에선 특정 장소만 있었는데.
권진하:아, 그거-
일제 시대 영향이 크지, 아무래도?
원래도 벚나무는 한국 품종이 맞긴 한데... 일제 시대 때, 자기네들 미학이라면서 곳곳에 심었거든.
류아현:아하, 그렇게 좋은 역사는 아니었구나. (냠냠)
아는 게 많네, 진하 넌.
권진하:그냥 잡지식이 많은 거지 뭐.
한국사는 꽤 재밌거든.
류아현:...그래?
난 이상한 왕 이름만 잔뜩 늘어놓길래 이게 뭐지 했는데.
권진하:하하, 왕 이름이 헷갈리긴 하지.
사실상 앞글자만 다른 수준이니까.
류아현:한국 오기 전에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래서 가볍게 문제 훑어만봤는데, 무슨 다 똑같이 생겼어. 순서를 외우기는 했는데.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권진하:정석으로 잘 외웠네.
류아현:...차라리 유럽사처럼 아우구스트 2세 이런 정도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은데.
권진하:음- 사실,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가서 알아봤거든?
동양의 옛 조상님들은 높은 사람일수록 이름은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더라고.
뭐랄까... 그냥 단순히 왕을 칭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 같은 것도 포함했다나봐.
덕분에 후손들이 역사 외우기를 힘들어하게 됐지. (피식)
류아현:흠... 나만 어려운 건 아닌가 보네. (별다른 생각 없이 아이스크림을 깨물어먹음)
권진하:그래도 전부 다 외울 필요는 없고, 항상 단골로 언급되는 왕들이 있으니까 그 부분을 위주로 공부하면 돼.
류아현:그렇구나. 좋은 팁이네.
진하 넌 무슨 과목 제일 좋아해?
권진하:사회랑 영어.
류아현:흐음... 하긴 외교관 쪽 생각한댔으니까. 무리는 아니겠다. (냠냠)
권진하:넌 특별히 어려운 과목 더 있어? 한국사 말고.
류아현:음...
음악?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더라고.
권진하:음악...?
음악을 딱히 공부할 게 있어?
류아현:...
(민망) ... 나 음치 박치야.
권진하:...?
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하느님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아현은 모든 과목을 전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진짜 예상 외의 대답에 얼빠진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빡이다가 웃기 시작한다) 하, 하하...!
진짜?
류아현:... (슬쩍 고개를 돌리며) 손재주 좋아서 악기 연주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닌데,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이 엄청 오래 걸려.
...재밌어? 웃지 마-...
권진하:아하하! 그치만- 웃긴 걸 어떡해?
신이 공평하긴 하구나? 네가 못하는 게 있을 줄은 몰랐는데.
류아현:... 나도 못하는 거 있거든? 신이 그렇게 공평하진 않다고. (삐죽)
권진하:(한참을 웃다가 손으로 눈가를 쓸며) 하아...
음치랑 박치라니. 하긴 음악까지 잘했으면 너무 사기라고.
그럼 음악 시간엔 남들이랑 똑같은 기분을 느낄 순 있겠네.
류아현:...그 이하지. 노래는 전혀 꽝이야.
권진하:너도 못하는 게 있다니...
기분이 어땠어?
류아현:지금은 괜찮은데, 어릴 때는 창피했지...
권진하:그랬구나-
어린 아현이가 많이 부끄러웠겠네.
류아현:(조잘조잘) 수영도 마찬가지야. 다른 육상 체육은 다 자신 있는데 하필 맥주병이라 물에도 안 떠서 한번은 물 왕창 먹고...
... (잠깐 내가 이 얘기를 왜 하고 있지?)
권진하:(피식) 한국에선 수영 수업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아현아?
류아현:... (삐죽) 나 놀려?
권진하:응. 놀리는데.
류아현:너무해.
넌 못하는 거 뭔데? 당장 말해-
권진하:(으쓱) 딱히 없어.
난 다 평균 이상으로 해.
류아현:거-짓-말. 빨리 말해.
권진하:진짠데.
내가 바쁘게 산다며.
그럼 알 거 아냐.
류아현:...내가 뭐를 알아?
권진하:내가 여기저기 일 많이 벌려놓는 타입인 거.
류아현:... 그건... 맞지.
그럼 정말 못하는 게 없어? 부럽네...
권진하:그런가.
난 네가 더 부러운데.
류아현:그런가... 난 어떤 분야는 대충 해도 결과물이 잘 나오는 반면, 어떤 건 죽어도 안 되니까... 어릴 때는 망신당할 일이 많았어.
아버지가 교양으로 피아노 배우는 건 어떠냐고 하셔서 피아니스트까지 초빙했는데, 간단한 곡 하나 마스터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고...
수영 수업을 할 때는 수영장 바닥까지 머리를 꼴아박질 않나... 으.
권진하:뭘 망신당할 것까지야-
보통은 자신 없는 분야는 하나씩 갖고 있는데.
게다가 피아노는 어쨌든 마스터를 하긴 했잖아.
류아현:방금 전까지 넌 못하는 게 없다며. 열받아. (잠시 고민하며 다 먹어버린 제 아이스크림 막대를 휘휘 돌리다가, 네 몫의 아이스크림을 한 입 왁 깨물어 뺏어먹는다)
권진하:아! 내 건데.
(무의식적으로 아이스크림 막대를 입에 물다가) 한 번 시작한 건 될 때까지 시도하는 편이니까 그런 거 아닐까.
무난하게 잘하지만 또 엄청 특출나게 잘하는 건 딱히?
류아현:흥, 다 가진 자의 위선이야 그거.
권진하:(눈을 가늘게 뜨며) 참나- 영재 소리 듣던 사람한테 "위선자" 소리를 들어야 해?
류아현:공개적으로 망신 당할 일 없고 친구도 많은 사람이니까 들어 마땅하지.
권진하:(냠냠) 넌 그런 건 전혀 신경 안 쓰는 줄 알았는데.
류아현:내가 무슨 기계인 줄 아냐, 넌. (슬쩍 고개를 숙여 아이스크림을 한 입 또 꾹 뺏어먹는다)
권진하:에휴- 그냥 너 다 먹어라, 먹어. (아이스크림을 아예 건네준다)
당연히 기계라고는 생각 안 했지.
네가 기계였으면 이렇게 내 말을 온갖 고집을 부려가며 안 들었겠어?
100% 사람이지, 아현이는.
류아현:알아주니 고맙네. (편하게 네가 입댄 부분 안 댄 부분 신경 안 쓰고 냠냠 먹는다)
권진하:'잘 먹네... 좋단다...'
그냥 뭐든 열심히 하는 게 버릇이라 그래.
류아현:... 버릇 한번 고약하네. 그러다 지친다, 너.
권진하:고약하긴. 나름 페이스 조절은 하거든?
모든 분야가 다 재밌는 건 아닌데, 열심히 하고 나서 좋은 결과를 받으면 그때의 고생이 전부 잊혀져서 좋아.
류아현:나중에 취직하면 넌 100% 일중독이겠다. (냠냠)
권진하:중독이라고 할 수 있나?
흠... 계획한 대로 흘러가면 일하러 가는 순간이 즐거울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네.
류아현:참나, 과로하다가 죽지나 마. 너랑 계속 친구할 거라고, 나.
권진하:어? 졸업하고 나서도 나랑 친구하고 싶어?
류아현:...
(홱) 싫으면 말고.
권진하:누가 그래? 싫다고.
(잠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너처럼 똑똑한 애가 나를 나중에 기억할까 싶었거든.
이런 작은 나라에서, 일반 고등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도 답답해 하잖아.
언젠가 외국인이 가득한 곳에서 엄청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겠지 싶어서.
류아현:...똑똑하다며. 잊긴 뭘 잊어.
바-보.
권진하:내가 뭐.
류아현:내가 머리가 이렇게 좋은데 잊겠어? 잊고 싶어도 못 잊지.
이상한 걱정 하지 마.
...넌 너무 예뻐서 잊고 싶어도 못 잊을걸.
권진하:(흠칫) ... 야, 넌 진짜 한번씩 무의식 중에 훅 치고 들어오더라.
류아현:...내가 뭘. 사실이잖아.
권진하:나도 내 얼굴 어떻게 생겼는진 아는데, 무슨... 애틋한 것처럼 말하니까 그렇지.
류아현:... 내가 뭘. 사실이잖아. 안 보면 보고 싶어진다고. (얼굴이)
권진하:ㅁ, 무,슨 소리야.
그 말 엄청나게 오해하기 좋게 들린다고;;;
류아현:어떻게 오해하기 좋은데? (네 아이스크림을 혀로 할짝이며 무뚝뚝하게 먹는다)
권진하:(삐질...) '얘... 일부러 물어보는 건가? 지금 보니까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도 아무렇지 않게 전부 핥아먹질 않나...'
'이걸 뭐라 대답해야 해? 친구 사이에 "네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들린다." 라고 말하면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지잖아.' ...
(입술을 달싹이다가 뺨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린다) ...됐어.
류아현:...말을 왜 하다 말아.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간 네 고개를 슬쩍 바라봤다가 멈칫하며) ...진하 너 얼굴이 엄청 빨개.
권진하:여름이라서 그래.
여름이라서...
'왜 얼굴이 빨개지고 난리야?' 아이스크림도 네가 다 뺏어먹었잖아.
류아현:...? 너 안 덥다고 아직까지 춘추복 입으면서, 여름은 무슨 여름이야. 아이스크림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산책하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네게 손을 뻗어 이마에 손바닥을 댄다. 열이 있지는 않은데...)
권진하:(움찔 어깨를 들썩이며 뒷걸음질친다) ㄱ, 갑자기 뭐하는 거야?
류아현:열 나나 싶어서. (제가 체온이 높아서 잘못 재는 것일까 싶기도 해서, 네 이마를 고르게 쓰다듬고 뺨에도 손바닥을 댄다. ...뭐지? 내 착각인가? 열이 없는데)
권진하:열 같은 거 없거든?! (일부러 피하려고 뒷걸음질 치는 건데, 자꾸만 네 손이 닿아서 뺨의 열기가 가시질 않는다) 진짜 더워서 그런 거라고...
류아현:(너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툭툭 셔츠 윗단추를 풀어준다) 그래도 아프기 전 전조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당장은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권진하:(헛숨을 들이키며 셔츠 단추를 벗기는 손목을 낚아챈다) 진짜...!
진짜 괜찮아.
정말로....
류아현:...? (네게 손목이 그대로 붙잡힌 채로, 어정쩡하게) 알, 았어. 그럼 슬슬 들어가자. 덥다며.
권진하:그래.
(눈을 꾹 감고 입을 다물었다가) ... 들어가자.
류아현:아, 그 전에 잠시만. (손을 들어 네 머리카락에 살포시 내려앉은 벚꽃잎을 집어 뗀다)
권진하:뭐..., (덜컥- 심장이 덜그럭거린다) '미친 거야... 진짜 미친 거야, 권진하 너.'
류아현:(네 머리카락에서 떼어낸 벚꽃잎을 가만 바라보다가, 네 손을 턱 들어올려 손바닥에 꽃잎을 놔준다) 자, 선물. 얘가 너 좋대.
권진하:(목이 타다 못해 침을 꿀꺽 삼킨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손바닥에 놓인 꽃잎을 바라본다) ... ㄱ, 고마워. 아니, 그래.
류아현:... (걱정스럽게 너를 들여다보며) 진하야. 괜찮아? 역시 보건실에 가야 할 것 같은데...
권진하:진짜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동무를 하며) 별 걱정을 다 한다니까, 우리 아현이는.
류아현:괜한 걱정이면 다행이고. (...그렇게 말하고는 어깨에 걸쳐진 네 팔을 바라보다가, 얘가 혹여 더위를 먹어 현기증으로 쓰러질까봐, 언제든 기댈 수 있게 딱 몸을 붙인다)
권진하:(몸이 딱 붙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뻣뻣하게 팔을 다시 들어올린다) 아- 너무 덥다!
얼른 교실로 들어가야겠어.
류아현:...? (본인이 어깨동무 해놓고 금방 떼네) 그래. 들어가자.
권진하:(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들키지 않으려 척척 앞장 서서 간다) 얼른 가자. 나 시험 공부 해야 해.
류아현:아, 같이 가. (그런 네 속을 전혀 모른 채 척척 따라간다)
당신이 부끄러움과 두근거림으로 운동장 외곽을 걸어나가고
류아현이 당신의 뒤를 영문 모른 채 따라가는 사이
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벚꽃들은 일제히 비처럼
화려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주인을 잃은 아이스크림 포장지가 바람에 힘 없이 굴러가고,
그 위를 덮듯 연분홍 꽃잎들이 겹겹이 쌓여가며
봄의 한복판을 기록합니다.
떨어지는 벚꽃잎의 속도는 초속 5cm라고 했던가요.
그 느릿한 속도가 빠르게만 느껴지는 건,
아마 물리 법칙이 아닌 사람의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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