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경계심 풀기

 





그 후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날아갔습니다.
시계 속의 시침과 초침은 마치 날개 달린 새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빗장을 풀고 날아가려 하는군요.
당신 앞에 그대로 놓여 있는 날개 꺾인 새와는 다르게 말이죠.
당신의 지시에 따라, 수하들은 류웬아힐을 무거운 철문이 가로막은
비밀 무기 공방으로 이송한 뒤 의사를 불러 치료를 시켰고,
그는 이제야 사람다운 몰골을 한 채 당신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먼지 묵어 케케했던 백발은 백열 전구 아래서 쪼개지듯 반짝이고
그의 팔다리에는 아주 최소한의 수갑과 족갑이 채워져 있습니다.
온몸에 피가 낭자했던만큼 아물어가는 상처는 흉터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건 신체의 회복일 뿐이지 이 남자의 경계심이 허물어졌다는 뜻은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를 치료하려던 의사는, 손이 닿기만 해도 발작적으로 살을 물어뜯으려하는 남자의 상태 탓에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겉으로 드러난 심각한 화상과 칼질 당한 흔적들을 봉합하는 게 전부였죠.
정말이지 성질 머리 한번 더럽기 짝이 없습니다.
당신은 굳건히 매서운 눈을 뜨고 있는 류웬아힐의 앞에 놓인
간단한 식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따뜻한 수프, 딱딱하지 않은 빵, 신선한 물.
그러고보니... 듣자하니 음식을 내줘도 그동안
먹기를 거부하든가, 아니면 한 입만 먹고 내던지든가 했다죠.
생리적인 굶주림에 굴복할 때도 되었는데.
죽고자 하는 의지가 살고자 하는 의지보다 강한 걸까요.
알 수 없습니다.
이든:'우리에 갇힌 맹수가 따로 없군. 늑대는 늑대다 이건가.'
음식이 입에 안 맞나?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도 못했잖나.
류웬아힐:... (그저 계속 노려본다)
이든: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 아니면 식사를 못해서 기운이 없는 건지...
뭐 상관없어.
'억지로 먹여봤자 반항심만 커질테니까.'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빤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들어올린다) 정말 먹지 않을 건가?
류웬아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든:구해준 사람에게 다짜고짜 이를 드러내는 건, 크론하르트가 라델리한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 생각하는 건가?
우리는 그 일에 가담한 적 없어. 어차피 믿을 생각도 없겠지만.
류웬아힐:(가만히 노려만 본다. 어디서 뻔한 거짓말을. 적어도 이 새끼는 믿지 않을 거다. 이 새끼가 하는 말은 전부)
이든:(어차피 대답을 듣고자 했던 말은 아니라 개의치 않고 네게 대접했던 식사를 들고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우아하게 한입 먹기 시작한다)
류웬아힐:... (...뭐하는 거지? 이 새끼? 어이가 없어서 빤히 바라본다)
이든:왜. 독이라도 들었을까 의심했나?
(마저 식사를 이어가며) 좋은 식사를 버리는 취미는 없어서.
아깝잖아.
류웬아힐:(독이 들었으면 이미 다 처먹고 뒤졌겠지, 멍청아)
이든:크론하르트는 들개를 굳이 들이지 않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대우 아닌가?
아니면 혹시- (눈을 반 접어 입꼬리를 끌어당긴다) 직접 먹여줘야만 입에 넣는 취미라도 있는 건가?
류웬아힐:(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이든:대답 안 하는 걸 보니 맞나?
제법 아이 같은 면이 있군 그래.
류웬아힐:미친 새끼. 감 다 뒤졌냐?
이든:그래. 아직 욕을 할 기운은 남았군.
좋은 징조야.
류웬아힐:씨발, 좆같은 소리 듣다가 어이가 없으니까 그렇지.
이든:(피식) 좋아.
이제 욕 말고 다른 말도 해보지.
류웬아힐:난 할 말 없거든?
이든:(식사를 마치고 빈 식기를 들고 일어난다) 그럼 오늘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문으로 향하며) 다음에도 도발하고 싶다면 식사는 거르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식사를 해야 욕할 기운이라도 생기지 않겠어?
류웬아힐:씨발. 시끄럽고 그냥 죽이라고
이든:(뒤에서 꽥꽥거리는 걸 무시하고 근처에 있던 수하에게만 들리도록) 오늘부터 감시 인원은 한 명으로 줄인다.
솔저:예, 보스.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이든:'저항할 대상이 있어야 죽으려고 악을 쓸테니 당분간은 관심을 거두는 게 좋겠지.'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내게 알리도록.
솔저:받듭니다.
.
.
.
시간은 다시금 흘러 이틀이 더 지나갑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넘어
크론하르트 패밀리의 대저택 집무실 안으로 길게 늘어집니다.
당신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물류 수송 보고서와
네바라 항구의 관세 우회 장부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며,
깃펜의 서늘한 서각 소리만을 방 안에 채우고 있습니다.
카포들에게 보낼 지시서에 간결하게 서명을 마치고 다음 서류로 손을 뻗던 차,
조용히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류웬아힐의 감시를 맡겼던 수하가
무거운 걸음으로 당신의 앞에 들어섭니다.
솔저:...보스. 라델리한의 늑대 새끼가 식사를 거부하다가 탈진해 쓰러졌습니다.
그대로 죽게 두는 편이 어떠십니까.
길들이는 건 도저히 무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든:(눈을 내리깔고 서류를 마저 보며)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지?
솔저:... 크론하르트의 후계자이신 젊은 주인이십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은 참견을 했습니다.
이든:잘 아는군.
내가 지적하기도 전에 네 잘못을 알았으니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
솔저:... (고개를 푹 숙였다가 잠시 후에 들며) ...감사합니다. 라델리한의 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분부를 내려주십시오.
이든:(손안의 펜을 빙빙 돌리며) 흠...
탈진한 김에 수액 처방하고, 다음 식사부터는 나와 함께하도록 하지.
솔저:...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받듭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당신의 서늘한 질책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수하가
명령을 받들고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갑니다.
문이 닫히고 다시금 찾아온 정적 속에서,
당신은 손가락 사이로 매끄럽게 돌아가던 펜을 멈추고 책상 위에 내려놓습니다.
라델리한 브라트바의 마지막 유산이자 긍지 높은 늑대 새끼는
기어코 제 육신을 갉아먹는 극단적인 단식으로 당신의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 모양입니다.
그 또한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차선책을 마련해둔 줄도 모르고 말이죠.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창밖으로 네바라 항구의, 파도가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굶어 죽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오만한 천재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흥미로운 침묵이 몰려드는 것 같군요.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미 그 맹수의 목줄은 당신의 손아귀에 쥐여 있고,
다음 식사부터는 절대로 굶지 못하게 만들 작정이니까요.
.
.
.
이틀의 시간이 다시금 지나갑니다.
당신의 앞으로 류웬아힐이 마침내 의식을 되찾았다는
짤막한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당신은 지시했던 대로 강제로 생명이 연장된 채 눈을 떴을 남자를 마주하기 위해,
미리 준비시킨 식기를 든 하인을 대동하고 지하 통로로 걸음을 옮깁니다.
굶어 죽음으로써 당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의 지독한 저항이
무위로 돌아간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줄 때가 된 것이지요.
끼이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자 방 안에는 서늘한 약물 냄새와 함께,
여전히 링거 바늘이 꽂힌 손목을 거칠게 뜯어내려다 저지당한 듯한
남자의 참담한 흔적이 먼저 시야에 들어옵니다.
초췌해진 몰골로 침대 모서리에 않은 채 당신을 바라보는 류웬아힐의 눈빛은,
예상대로 분노와 굴욕감, 그리고 인간을 향한 깊은 혐오로 무섭게 번뜩이고 있군요.
자신이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비참한 암흑가의 현실을
이제야 좀 제대로 실감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침묵이 침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당신은 그의 살기 어린 시선을 지극히 차분하게 받아내며,
하인에게 명해 온기가 남아 있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차려내도록 만듭니다.
이든:(류웬아힐이 앉든 말든 자신의 자리에 앉아 먼저 식기를 든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기품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류웬아힐:(대체 뭐하자는 거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서 잠깐 바라보다가 도로 침상에 드러눕는다)
이든:(정말 정직하게 식사만 하더니 냅킨으로 입술을 닦고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오지.
류웬아힐:(등까지 돌려눕고는) 꺼져. 새끼야.
.
.
.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당신은 아침 점심 저녁마다 류웬아힐을 찾아가
별다른 일 없이 홀로 식사를 합니다.
왜 저렇게까지 버티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계속 굶어봤자 어차피 또 수액이나 맞출 텐데.
정말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요?
점점 이해할 수가 없어집니다.
당신은 하루가 또 지난 뒤
아침 식사를 하러 그의 방에
다시금 찾아갑니다.
끼이익-
이제는 익숙하게만 들리는 철문 소리를 듣고
수하를 시켜 식사를 세팅시킨 뒤 내부를 제대로 바라보면
류웬아힐은 당신을 등진 채 누워
죽은 것처럼 누워 있습니다.
이든:
관찰력
기준치:65/32/13
굴림:49
판정결과:보통 성공
작게 어깨가 흔들립니다.
무얼 하고 있는지는 뻔하네요.
이든:(우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부하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한다)
당신이 지시하자 당신의 수하들은
식사 준비를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갑니다.
곧 침실에는 정적이 내려앉고
그 사이로 가느다랗게 막힌 듯한 숨소리만 배어나옵니다.
이든:(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류웬아힐이 누운 침실 모서리에 앉아 지켜본다)
류웬아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침대 면이 기울어지고 인기척이 가까워진 것만은 눈치 챘는지
숨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금 가늘게 이어냅니다.
하지만 당신을 돌아보지는 않는군요.
당연하겠죠. 긍지 높던 늑대 새끼였는데.
이든:(흐트러진 이불을 제대로 덮어준다)
류웬아힐:...
저리 가. 꺼져. (얼굴이 눈물 범벅인 게 자존심 상해서 오히려 베개에 고개를 더 파묻는다)
이든:그건 못 들어주겠는데.
(으쓱) 나가면 나까지 굶게 되잖나.
류웬아힐:밖에서 먹어, 미친아. 돈도 많은 게.
이든:(피식) 밥은 안 먹으면서 대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남아도는 건지 모르겠네.
류웬아힐:하... (어이가 없어서 슥슥 눈물을 닦고 째려본다) 넌 밥 먹고 대가리에 똥통만 채우냐? 꺼지라고. 그럴 거 아니면 죽이든가.
이든:네가 원하는 걸 순순히 해 줄 이유가 없는데 내가 뭐하러.
류웬아힐:또라이 새끼가. 네가 버티면 내가 기밀 정보 술술 불어줄 줄 알아?
이든:기밀?
한동안은 라델리한의 기밀이 궁금하긴 했었지.
지금은 이미 그런 게 없어도 굴러가지만 말야.
내가 원하는 건 네 입이나 네가 담궜던 조직의 정보가 아니야.
류웬아힐, 너 그 자체지.
류웬아힐:내가 뭐. 원하면 대가리만 잘라가라니까?
이든:식사를 거르더니 정말 돌대가리가 되었나 보군.
류웬아힐:이 씹새끼가...! (홱 일어나서 멱살을 붙들고 으르렁거린다)
이든:(멱살이 붙잡혀도 여유롭게 웃으며) ... 이대로 죽기엔 억울하지 않나?
라델리한을 무너뜨린 자들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냐고.
류웬아힐:...!! 이 빌어먹을 새끼가...! 네 놈이 알겠지! (안구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어 눈앞에 보이는 입술부터 이를 박아넣는다. 살을 아작낼 기세다)
이든:
민첩
기준치:60/30/12
굴림:2
판정결과:극단적 성공
아무리 늑대라도 기력이 빠진 놈의 공격.
당신은 그 날카로운 이빨을 가까스로 피해냅니다.
자칫하면 입술이 뜯겨나갈 뻔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이 녀석을 어떻게 제 편으로 끌어들이죠?
이든:(피식) 하. 약해 빠졌군.
라델리한의 늑대 새끼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약해졌어.
류웬아힐:...!! (분노로 바들바들 떤다) 이, 개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이든:(네 턱을 붙잡고 저를 보게 하며 얼굴을 가까이 한다) 분노가 주체가 안 돼?
화나고 억울한가?
류웬아힐:씨발! 너 같으면 안 그러겠냐 이 씹새끼야...!!
류웬아힐:
근력
기준치:55/27/11
굴림:31, 27, 55
+2:어려운 성공
+1:어려운 성공
  0:보통 성공
-1:보통 성공
-2:보통 성공
거친 반항 속에서 당신의 손은 툭 날라갑니다.
아직까지 이럴 기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그동안 밥 한 끼 먹지 않았으면서.
다른 의미로는 대단한 정신력입니다.
이든:(네 멱살을 세게 쥐며) 그럼 더욱 더 살아야지.
악착같이 살아서, 쥐새끼든 개새끼든 복수할 기회를 노리며 칼을 갈으라고.
(다시 탁- 놔주고는 멱살을 쥐었던 손에 시선을 잠깐 두다가) 아무리 봐도 죽고 싶어 안달난 놈의 눈이 아니라서 말이지.
류웬아힐:(멱살이 잡혔다가 놓이며 작게 헛기침하다가, 울컥 눈물이 북받친다) 씨발 복수한다고 돌아와...?! 내 부모님은? 내 가족들은...!!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다 죽었는데!!
(다시금 네 멱살을 거칠게 잡아뜯으며) 꺼져! 아니면 죽이라고! 죽여! 죽여!
이든:(숨이 조여와도 고개를 쳐들고) 큭...,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지.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죽는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네가 제일 잘 알텐데.
류웬아힐:...
이든:라델리한을 무너뜨린 놈들이 정말 크론하르트라면,
내가 굳이 널 이렇게 갖출 것 다 갖춘 방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제공하라 지시할 필요가 있나?
류웬아힐:나한테 효용 가치를 느껴서잖아...! 다른 새끼들이랑 똑같아 너도!
이든:그래서 내가 그들과 똑같이 고문했나?
(쉽게 네 멱살을 뿌리치고는 목을 감싸쥔다.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 채) 네게 효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살린 건 맞다.
하지만 너 하나 사라져도 내 쪽에서 굳이 손해 볼 이유도 없지.
넌 원래 크론하르트가 아니었으니까.
류웬아힐:(허공에 떨어진 손끝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매섭게 노려본다) 그럼 내가 죽든 말든 상관 없잖아...! 죽이라니까?!
(말하다 말고 제 처지가 서러워서 노려본 채로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씨발... 죽여달라고. 제발 죽여. 살기 싫다고.
이든:... (가만히 널 바라보다가) 그래.
바라는 대로 죽여주지.
하지만 공짜로는 안 돼.
류웬아힐:(죽여달라고 했으면서도 죽여준다는 말에 심장이 덜컥, 했다가 공짜가 아니라는 말에 또 덜컥한다) ... 원하는 게 뭐야.
이든:내가 바라는 조건은 세 가지.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 식사하고, 제대로 잠을 자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것.
수액으로 영양은 잠깐 보충시켰지만, 지금의 넌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일주일 동안 내가 걸은 조건을 잘 유지하면, 네 소원대로 죽여주지.
어때? 네게도 어려운 제안은 아니지 않나?
류웬아힐:...
(의심스럽게 노려보며) 어렵진 않지만. 내가 너의 뭘 믿고?
이든:내가 배신을 한다면 뭐 어쩔 거라 생각하지?
류웬아힐:...
이든:사람을 죽이는 건 간단하지. 그저 급소를 찌르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깨끗한 방에서, 멀쩡한 식사를 갖다주며 사람을 살리려 하는 게 더 번거로운 일인 걸 너도 잘 알텐데.
다시 한번 말하지.
일주일 뒤에도 네 죽고 싶은 의지가 그대로라면, 고통 없이 단숨에 보내주겠다.
류웬아힐:...
좋아. 받아들이겠어.
이든:(만족스럽게 웃으며 계약 체결의 의미로 악수를 권한다) 드디어 원하는 대답을 하는군.
류웬아힐:...
우리가 악수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손 치워.
이든:계약의 기본 매너인데 역시 머리가 많이 나빠졌나 보네.
류웬아힐:방에 신변을 감금한 새끼 말을 다 믿을 정도로 나쁘지도 않거든?
이든:(가볍게 무시하고는 흐트러진 매무새를 정리한다) 어서 다음 식사 자리를 마련해야겠어. 지금은 너랑 놀아주느라 음식이 다 식어버렸으니.
(식탁에 놓인 식전빵을 하나 집어먹으며 나가는 문으로 향하며) 푹 쉬고 있어. 괜히 기운 빼지 말고.
류웬아힐:...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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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웬아힐과 이상한 자살 사주 계약을 해준 지
벌써 사흘째입니다.
류웬아힐은 죽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체념하기라도 했는지 뭐 씹은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몸을 씻고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죠.
사실 잠을 잘 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수하를 시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악몽을 꾸는 것 같다고는 합니다만
억지로 침대에 붙들어두면 수면 시간은 채운다고 합니다.
뭐, 그건 본인 의지로 되는 일은 아니긴 하죠.
그간 소화에 부담이 되지 않을 음식들만 먹였지만
슬슬 다른 음식을 먹어도 될 정도로 몸 상태가 나아진 류웬아힐은
음식의 간이 세졌거나 말거나, 고기가 나오거나 말거나
당신의 옆에서 턱만 움직이며 음식을 씹고 있습니다.
류웬아힐:(우물우물 냠냠...)
이든:(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이어나가다가) 뭐 더 필요한 건 없나?
류웬아힐:물 한 잔 더. (입맛 없어서 목 멕힘)
이든:(손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부하에게 물을 가져오라 지시한다)
류웬아힐:(슬쩍 바라보다가 마저 스튜를 먹으며) ...아주 지극정성이네. 곧 죽일 놈한테.
담배 있어?
이든:당연히 있지.
크론하르트에서 유통하는 마약도 원한다면 제공해주지.
류웬아힐:그래. 다 줘. (시큰둥... 냠냠)
나 또 필요한 게 있는데.
빈 공책 하나만.
필기도구도.
이든:(작게 피식 웃으며) 죽여주겠단 놈한테 요구하는 것도 많군.
그래. 전부 다 주지.
류웬아힐:그래.
(냠냠... 으, 목 막혀)
이든:(식사를 먼저 마치고는 네 앞에 약을 하나 내민다)
류웬아힐:? 뭐야. (물어보면서도 일단 받는다)
이든:수면제.
듣자 하니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아서.
류웬아힐:별걸 다 아네. 감시꾼한테 그런 것도 듣냐?
이든:네가 계약을 이행하는지 보고 받는 건 당연한 거니까.
류웬아힐: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으니까 총이나 닦아두든가.
이든:(이젠 고양이가 캭캭거리는 걸로 듣고는) 하하, 참고하지.
류웬아힐:...
다 먹었으면 가. 나머진 알아서 먹을 거야.
이든:나랑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한가?
류웬아힐:... 너라면 편하겠냐?
이든:식사 시간이 길어봤자 고작 한 시간인데 그 외의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거면, 꽤 관대한 대우라고 생각하는데.
류웬아힐:제멋대로 생각하는 것 하고는... 하아... 됐다. 마음대로 해. 그보다 이렇게까지 계속 식사할 이유가 있나? 계약대로 잘 먹을 테니까 이제 슬슬 무시 까.
이든:네가 나를 완전히 믿지 않는 것처럼 나도 마찬가지니까.
식사 자리를 휙휙 바꾸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널 굳이 보러 오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지.
류웬아힐:봐서 어쩔 건데. 내가 장식품이냐? 수하 시켜. (생각X)
이든:장식품은 아니고, 야생에서 잡힌 늑대 새끼 같군.
류웬아힐:이거 웃긴 새끼네...
이든:그런 소리는 많이 듣지.
류웬아힐:칭찬 아냐, 또라이 새끼야.
이든:(타격 0) 그 소리도 자주 들어.
류웬아힐:미친 놈. (타박해도 딱히 별 생각이 있는 건 아니라서 마저 열심히 먹는다)
이든:아, 정정하지. 그것도 다 옛날 일이니까.
류웬아힐:보스라서 말로만 못하지 다들 여전히 똑같이 생각할 거다.
뇌에 구멍 뚫렸냐? 미친 소리 줄줄 새네.
이든:그래 보여? 아직 머리에는 뚫려본 적 없는데.
류웬아힐:나흘 지나고도 나 안 죽이면 곧 뚫게 될 거다.
이든: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아니면 나흘 뒤부터는 주기적으로 머리를 닦아놓는 편이 좋겠네.
류웬아힐:그건 현명하네.
야.
너 친구 없지.
이든:뜬금없고 쓸데없는 질문이네.
류웬아힐:사회성 딸려서.
이든:(피식)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류웬아힐:네놈보단 낫지, 내가.
이든:어느 부분에서?
류웬아힐:돈 빼고 다.
이든:구체적으로 말해야 알지.
류웬아힐:설명하기 귀찮다. (나태)
이든:역시 친구가 없는 건 너로군.
류웬아힐:뒷통수 친 놈은 있지.
이든:이 바닥에 그런 놈 없는 사람도 있나.
류웬아힐:...그건 그래. (음식을 다 먹고 식기를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빤히 바라본다)
이든:더 필요한 게 남았나?
류웬아힐:슬슬 수갑 풀어줘. 어차피 도망도 못 친다고. (족갑에 쇠구슬이 두 개나 달려 있음)
이든:'필기 도구를 쓰려면 그러는 편이 좋겠지.' 그래.
(곧바로 손을 슬쩍 들어 부하를 불러서 수갑을 풀으라 지시한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면,
류웬아힐의 두 팔을 옥죄던 수갑이
철컥, 철컥, 풀려나갑니다.
수갑을 잇는 사슬이 적당히 길어
그간 생활하기에 무리는 없었겠으나
류웬아힐은 팔이 자유로워지자 그제야 기색이 한결 누그러집니다.
류웬아힐:... (수갑을 너무 오래 차고 생활을 한 탓에 어색하게 손바닥을 쥐었다 편다)
이걸 진짜로 풀어주네.
내가 그냥 목 조르고 죽으면 어쩌려고.
이든:네 머리라면 그게 헛수고란 걸 알테니까.
류웬아힐:내 머리를 엄청나게 신뢰하나 보네. 나 정신병자야, 멍청아.
이든:정신병자인 거 아니까 밥 잘 먹이고 잘 자라고 하잖아.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수갑을 찼어도 스스로 죽을 수 있었을 거고.
류웬아힐:그거야 고통스러운 건 싫으니까고...
이든:네 그 약해진 체력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고 죽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
고작 정상적인 생활 좀 했다고 체력이 돌아왔을 것 같나?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류웬아힐:참나...
한 마디 했다고 존나 종알거리네.
이든:처음보다는 덜 정신병자 같으니까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한 거야.
류웬아힐:그것 참 고오-맙네.
이든:(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음 식사 시간에 다시 오지.
(문으로 나가다가 네게로 고개를 돌리며) 네가 요구한 건 금방 갖다줄 거야.
류웬아힐:그래. 꺼져. 다신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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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기 짝이 없던 '자살 사주 계약'을 맺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약속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팔을 얽매던 수갑을 풀어준 이후로,
당신과 류웬아힐의 기이한 동석은 매일같이 이어졌습니다.
당신은 패밀리의 산적한 업무와 네바라 항구의 이권 다툼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 되면 기어이 시간을 내어 류웬아힐이 있는 침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족갑만은 채워진 채 뭐 씹은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죽기 위해 이행해야 할 조건을 제법 충실하게 지켜냈죠.
매일 마주 앉아 턱을 움직이는 동안,
처음에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날 선 기색은 눈에 띄게 완만해졌습니다.
건네받은 빈 공책과 필기구에 무언가를 끄적이고,
당신이 던져준 수면제 덕에 악몽에서 벗어나 제법 깊은 잠을 청한 덕분인지,
몰라보게 호전된 안색이 되었죠.
초췌하게 가라앉았던 뺨에는 미미하게나마 생기가 돌고,
거칠게 쏘아붙이던 독설 속에도 제법 예리하고 차분한 이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예상한대로, 그리고 바랐던대로
규칙적인 생활은 맹수의 상처 입은 뇌를 빠르게 치유하기 좋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인 법.
오늘은 마침내 계약의 마지막 날입니다.
끼이익-
당신은 흐트러짐 없는 걸음으로 철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방 안은 지독한 소독약 냄새 대신 서늘하고 깔끔한 공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당신을 기다리던 류웬아힐은 여느 때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당신을 응시하지만,
그 안에는 사흘 전의 그 무력한 체념 대신, 긴장감과 기묘한 탐색의 빛이 서려 있습니다.
품 안에서 묵직하고 서늘한 감촉의 권총 한 자루를 천천히 꺼내어 작업대 위에 내려놓으면
금속제 총신이 탁자 위를 구르며 둔탁한 마찰음을 냅니다.
고통 없이 단숨에 보내주겠다던 그 약속의 종착지이자,
이 오만한 천재가 과연 정상적인 이성을 되찾은 지금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것인지
시험할 냉혹한 판이 드디어 완성된 순간이로군요.
류웬아힐의 시선은 당신의 손끝에서 떨어져 작업대 위의 총구로 향합니다.
류웬아힐:...거래 내용을 충실하게 이행한 보상인가?
이든:그래. 약속은 약속이니까.
네 죽고 싶은 의지가 여전하다면 말이지.
류웬아힐:...
이든:(손목시계를 흘긋 보고는) 아직은 자정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천천히 고민해봐도 좋아.
오늘 저녁 식사는 조금 특별한 게 좋겠어.
네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으니.
류웬아힐:... 거절할 이유 없지.
... (슬쩍 총에 손을 뻗어 총신을 만져보며) 모델 P08 루거네. 이걸 아직도 써? 성능 별로잖아.
이든:역시 알아보는군.
(총을 한 번 내려다보고) 그래. 현장에서 구르는 놈도 아닌 내가 이걸 들고 다니는 게 의외일 수도 있지.
... 내가 크론하르트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날, 보스께 직접 받은 물건이다.
(총을 들어올리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느긋하게 시선을 훑는다) 성능만 따지면 더 나은 총은 얼마든지 있어.
하지만 손에 오래도록 익은 물건은, 설명 못 할 가치를 가지더군.
자세히 보고 싶나?
류웬아힐:딱히 그렇게까진. (시큰둥...)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준 거야?
내가 죽는대도 아쉬울 건 없다고 하더니, 이 쇠고랑만 제외하면 아주 귀빈 대접을 해줬잖아?
이든:크론하르트에서 쓸모 있을 거라 판단했으니까.
류웬아힐:그렇겠지. 그 이유뿐인 건 안다만.
이든:다른 이유가 더 있길 바랐나?
류웬아힐: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영 보스가 여기까지 행차하기엔 가성비가 안 좋다고 생각했지.
내가 죽지 않으면 네가 얻는 이득에는 뭐가 있지? 나열해.
이든:굳이 여기까지 오는 건 라델리한이었을 때의 네 위치를 고려한, 작은 배려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며)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오지.
(피식) 귀빈 대접이라 말하고, 내가 얻는 이득이 뭔지 명령조로 말하는 걸 보면 더 듣지 않아도 되겠어.
류웬아힐:성질하고는.
마음대로 해.
이든:(문밖을 나서려다 멈칫한다) 아.
좋아하는 디저트는 있나?
류웬아힐:...
딸기 타르트.
이든:'겉보기와는 다르게 귀여운 걸 고르네.' (작게 웃으며) 저녁 식사 시간에 준비하라고 하지.
당신이 던진 마지막 한마디를 끝으로,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돌아왔을 때 이미 죽어있을지, 아니면 살아서 타르트를 기다릴지는 모르겠지만.
.
.
.
끼이익-
수하가 열어주는 무거운 철문의 끼익거림이
슬슬 귀에 거슬릴 지경입니다.
류웬아힐은 당신이 든 총을 손에 쥔 채로 가볍게 돌리며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당신쪽을 바라봅니다.
그의 손에 금속제 총신이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군요.
수하가 들어와 테이블 위에 식사를 차리고
당신의 손짓 한 번에 조용히 물러가고 나면
이미 컴컴하게 그림자가 드리우는 창문 아래로
잔뜩 구겨진 침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모양이 같은 것을 봐서는, 눕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모양이군요.
그렇다고 정리를 할 정신도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게 생각에 빠져 오랫동안 고민하게 되었다는 일 자체가
삶의 미련임이 분명한데도 인정하고 싶어하진 않는 모양입니다.
류웬아힐:...늦었잖아.
밖에 해졌다고.
이든:(피식) 포로가 타박을 다 하는군..
날 기다린 건가? 아니면 타르트?
류웬아힐:타르트지. 앞에 걸 기대했어?
이든:이런. 타르트를 제공하는 사람도, 네 소원을 들어주는 사람도 나인데 타르트에 밀리다니 섭섭한데.
류웬아힐:농담도.
이든:식사부터 하지. (일부러 결정을 독촉하지 않고 평소처럼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류웬아힐:...보면 볼수록 속 편하네. (별 말 더 얹지 않고 따라서 우아하게 식사한다)
탁자 한가운데에 놓인 서늘한 권총을 눈앞에 두고도,
두 사람의 식사는 기묘하리만치 평온하고 우아하게 흘러갑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던 늑대 새끼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유려한 식사 예법에 맞추어 담담히 스푼을 움직이는 손끝만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당신은 은밀하게 남자의 눈동자를 살피며,
그가 제정신을 찾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파멸만을 갈망하는지
그 내면을 저울질하려 하지만, 도저히 판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죽음을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음에도 정작 무기보다는
당신이 늦게 가져온 딸기 타르트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식사를 마칠 때까지 총구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남자의 기묘한 태도.
굳이 그 모순을 입 밖으로 꺼내어 지적하지는 않지만,
약속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가
입가에 옅은 냉소를 머금게 합니다.
마침내 메인 요리의 그릇이 비워지고,
류웬아힐이 조심스럽게 붉은 딸기가 얹어진 타르트 접시를 집어 듭니다.
당신은 조용히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내며,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나 류웬아힐은 본인 앞에 타르트 접시를 손에 든 채로
꿈쩍도 않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만 있군요.
류웬아힐:... (덤덤하게) 요즘은 딸기 철이 아닐 텐데. 진짜 구해올 줄은 몰랐어.
이든:(그저 단순한 이치라는 듯) 약속은 약속이니까.
류웬아힐:내가 죽지 않겠다고 한다면, 날 어디에 쓸 거지?
이든:당연히, 브레인으로 쓸 생각이지.
류웬아힐:... 언제는 짐승 새끼라더니. 잘도 믿고 그런 직책을 내주겠다고.
이든:당장 내일부터 일을 시킬 계획은 없어.
몸의 회복이 우선이니까.
처음에 했던 말, 기억하나?
"크론하르트는 들개를 들이지 않는다."
내 명령은 절대적일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 가치를 판단하고 여기에 들이는 것까지.
이든:나머지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네가 들개 새끼인지, 정말로 늑대 새끼인지 증명해야만 할 거야.
류웬아힐:별 귀찮은 걸 다 시키네...
이든:말하는 걸 보니, 마음은 이미 정한 것 같군.
류웬아힐:...
크론하르트는 정말로 라델리한의 파멸과 무관한가?
이 질문의 답이 '예'가 아니라면, 내가 널 따를 이유는 전혀 없지.
거짓을 이야기한대도 밝혀낼 도리는 당장의 내겐 없으나, 크론하르트가 라델리한과 정말로 무관하지 않다면, 그때는 물어뜯길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이든:내게 들어온 정보는 없는 걸로 봐서는-
그래.
류웬아힐:...
(그제서야 타르트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네 손에 다시금 권총을 툭 내려둔다)
보스라고 불리는 건 꿈 깨.
내 조건은 그게 다니까.
이든:단순하네.
다른 조직원들 앞에서는 지금 같은 말투는 그만두는 게 네게도 좋을 거야.
지금 당장도 널 물어뜯고 싶어 안달난 녀석들이 있으니.
굳이 이를 드러낼 빌미를 줄 필요는 없잖아?
류웬아힐:그럼 뭐라고 하는데. 존칭이라도 써줘?
이든:죽어도 보스라는 칭호를 못 쓰겠다면 그거라도 해야지.
류웬아힐:귀찮은 것도 많다.
이든:그럼 지금이라도 다른 선택을 하겠어?
류웬아힐:...
시체 치우고 싶어서 안달 났어? 결정해줬으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뻔뻔하기 이를 데 없음)
이든:하하, 언제는 시체가 되고 싶어 안달났었으면서 이젠 살려준 사람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류웬아힐:그럼 고마워할 일을 하나 줄까. (대충 구석에 던져둔 노트를 펼치더니 한 페이지를 북 찢어 내밀어준다)
지금까지 주시했던 크론하르트의 마약 밀매 거래망의 취약 구조와 루트 비효율성, 개선 방안.
이런 걸 원했던 거 아닌가?
이든:(내밀어진 페이지를 슥- 훑고) ... 죽기 전에 일기라도 쓰고 싶은 건가 했는데.
류웬아힐:일기 같은 건 취미 없어. 받기만 해서는 찝찝해서 그런 거지.
일단 목숨값이었어.
이든:흠. '나도 생각 못했던 부분, 그리고 납득 가능한 내용들만 있군.'
나를 전혀 믿지 않았으면서 왜 이런 걸 준비했지?
류웬아힐:말했잖아. 목숨값이라고.
고문 당하는 건 지긋지긋했으니까. 빼내준 값으로 치지.
이든:(네가 준 페이지를 주머니에 넣으며) 아직은 계속 여기서 지내야 할 거야.
다른 형제들에게 가치 증명이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걸 보이려면 몸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순위니까.
류웬아힐:그렇군. 납득은 해. 그러면 그들의 신임을 사기 위해 가장 먼저 내가 해결할 부분을 짚어봐. 내 뇌를 쓰고 싶었던 거 아닌가? 차익성 가장 높은 사업을 얘기해주면 그 방향의 확장 프로젝트를 설계해주지.
이든:차익성이 가장 높은 건 무기 거래 사업이었지.
네 덕분에 전부 막혀버렸지만 말야.
류웬아힐:그럼 뭐, 뚫으면 되겠네. 마침 내 전문 분야기도 하고.
베르가모와 모라가 라델리한의 공백을 대신 채우기 위해 앞다투어 나서고 있을 시점 아닌가? 거래망을 확장시키려면 지금이 제일 바쁠 텐데.
이든:정확해. 너와 함께 움직일 형제들을 구성했으니 거기서부터 시작해.
류웬아힐:발이 빠르네. 내가 오늘 죽기로 했으면 어떡했으려고?
이든:(으쓱) 그럼 너 없이 진행하는 거지. 예정대로.
류웬아힐:계획적이라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 어쨌든. 좋아.
신제품을 개발할 작업실을 내줘. 라델리한이 망하기 전에 개발하던 게 있으니까. 그걸 마저 작업부터 하지.
무기 거래망은 입소문이 날 정도의 그물만 펼치면 충분해.
크론하르트는 라델리한이 무기 거래를 뺏기 전까지 이 네바라에서 무기 유통업을 좌지우지 했으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이든:갑자기 엄청나게 의욕적이네.
어제까지만 해도 발톱을 세웠으면서.
(피식) 딸기 타르트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류웬아힐:고작 딸기 타르트로 되겠어? 돈이나 충분히 달라고.
난 일단 모라부터 족칠 생각이니까.
이든:그래. 작업실, 돈 전부 주지.
하지만 아직 감시는 붙을 거야.
내가 바라지 않아도 다른 형제들을 위해서니까.
류웬아힐:마음대로 해. 어차피 도망가거나 죽일 생각도 없지만.
믿지 못하면 지들 손해지.
이든:또 원하는 건 없나?
류웬아힐:삼 주 동안 들어오지 마.
부품이 필요하다면 요청할 테니까.
이든:왜지?
류웬아힐:집중 깨지 말라는 뜻이야.
바로 작업 들어갈 거니까.
공방은 어차피 이미 이 옆에 있는 거 알고.
이든:그래.
대신, 작업실은 유리창이 있는 공간으로.
류웬아힐:별 신경을 다 써주네.
사양은 않지.
이든:삼 주 동안 방해하진 않아도 주변에선 네가 뭘 하는지 의심할 게 분명하니까.
(다시 한 번 악수를 권하며) 크론하르트에 온 걸 환영한다, 류웬아힐.
류웬아힐:(이번에는 거절 않고 악수를 받아준다) 잘 부탁하지. 이든 크론하르트.